분류
루이나 통신 Ruina News|Руинское Агентство Новостей | |||||||||||||||
공식 명칭 | Ruina News Agency Руинское Информационное Агентство 루이나 통신 | ||||||||||||||
국가 | |||||||||||||||
설립일 | 1951년 3월 1일 | ||||||||||||||
설립 주체 | 루이나 정부 공보처 | ||||||||||||||
형태 | 국가기간통신사 (정부 출자 공사) | ||||||||||||||
경영진 | 이사장 클라라 보네빌 (2023년~)편집국장 타일러 브루크스 (2021년~) | ||||||||||||||
직원 수 | 2,900명 (202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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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여부 | 비상장 (정부 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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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위치 | 루이나 벨포르 라파르그가 22 | ||||||||||||||
1. 개요 [편집]
루이나 통신(Ruina News Agency, RNA)은 루이나의 국가기간통신사다. 1951년 정부 공보처 산하 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78년 군정의 언론 통폐합으로 국내 통신사를 모두 흡수해 루이나의 유일한 종합 통신사가 되었다. 수도 벨포르에 본사를 두고 약 2,900명의 직원과 60개국 특파원망으로 국내외 뉴스를 수집해 신문사·방송사·포털·정부기관에 공급한다.
본업은 다른 언론사에 기사·사진·영상을 공급하는 통신 서비스다. 여기에 1984년 개국한 24시간 보도채널 TV 루이나 24를 운영하며, 《루이나 이브닝》《뉴사이트 21》 등 자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직접 만난다. 종합 편성 방송은 공영방송 루이나 방송공사(RBC)의 몫이며, RBC 역시 루이나 통신의 주요 고객이다.
모토는 "진실은 공동체의 힘이다"이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공사지만 1990년 제정된 「루이나통신법」에 따라 편집권 독립이 법적으로 보장되며, 경영은 정부와 독립된 공영이사회가 감독한다.
루이나 통신의 역사는 국가와 언론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1975년 띠에우리엔 보도로 정부 발표의 빈틈을 드러냈지만 같은 사건의 사진기자를 잃었고, 1978년에는 군정의 통폐합으로 몸집을 키우며 군정의 확성기가 되었다. 1989년 이후 독립을 얻은 뒤로는 그 과거를 스스로 조사해 공개했으며, 이 경험은 오늘날 루이나 통신이 과거사 문제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류 언론으로 꼽히는 배경이 되었다.
본업은 다른 언론사에 기사·사진·영상을 공급하는 통신 서비스다. 여기에 1984년 개국한 24시간 보도채널 TV 루이나 24를 운영하며, 《루이나 이브닝》《뉴사이트 21》 등 자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직접 만난다. 종합 편성 방송은 공영방송 루이나 방송공사(RBC)의 몫이며, RBC 역시 루이나 통신의 주요 고객이다.
모토는 "진실은 공동체의 힘이다"이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공사지만 1990년 제정된 「루이나통신법」에 따라 편집권 독립이 법적으로 보장되며, 경영은 정부와 독립된 공영이사회가 감독한다.
루이나 통신의 역사는 국가와 언론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1975년 띠에우리엔 보도로 정부 발표의 빈틈을 드러냈지만 같은 사건의 사진기자를 잃었고, 1978년에는 군정의 통폐합으로 몸집을 키우며 군정의 확성기가 되었다. 1989년 이후 독립을 얻은 뒤로는 그 과거를 스스로 조사해 공개했으며, 이 경험은 오늘날 루이나 통신이 과거사 문제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류 언론으로 꼽히는 배경이 되었다.
2. 역사 [편집]
2.1. 설립 (1951~1977) [편집]
루이나 통신은 1951년 3월 1일 정부 공보처 산하 기관으로 출범했다. 당시 루이나에는 1889년 창립된 민간 통신사 벨포르 통신과 1923년 창립된 루이나 경제통신이 있었지만, 둘 다 해외 취재망이 빈약해 국제 뉴스 대부분을 외국 통신사에 의존했다. 냉전 초기 사비에트의 대외 선전에 맞설 국가 차원의 정보 창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정부는 해외 특파원망과 외국어 송고 기능을 갖춘 국영 통신사를 따로 세웠다.
초기의 루이나 통신은 사실상 정부 발표를 전하는 기관이었다. 사장은 공보처장관이 임명했고, 국내 정치 보도는 민간 통신사보다 소극적이었다. 다만 해외 특파원망은 빠르게 커져 1960년대 중반에는 30여 개국에 기자를 두었고, 국제 뉴스에서는 민간 통신사를 앞질렀다.
1975년 청북전쟁 중 종군기자 이브 L. 카롱이 송고한 띠에우리엔 현지 보도는 루이나 통신이 처음으로 정부 발표와 다른 내용을 내보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보도는 국내외에 큰 파장을 낳았지만, 같은 취재팀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가 가져온 필름은 끝내 게재되지 않았고, 페뇨는 이듬해 1월 숨진 채 발견되었다.[1] 카롱은 1976년 회사를 떠났다.
초기의 루이나 통신은 사실상 정부 발표를 전하는 기관이었다. 사장은 공보처장관이 임명했고, 국내 정치 보도는 민간 통신사보다 소극적이었다. 다만 해외 특파원망은 빠르게 커져 1960년대 중반에는 30여 개국에 기자를 두었고, 국제 뉴스에서는 민간 통신사를 앞질렀다.
1975년 청북전쟁 중 종군기자 이브 L. 카롱이 송고한 띠에우리엔 현지 보도는 루이나 통신이 처음으로 정부 발표와 다른 내용을 내보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보도는 국내외에 큰 파장을 낳았지만, 같은 취재팀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가 가져온 필름은 끝내 게재되지 않았고, 페뇨는 이듬해 1월 숨진 채 발견되었다.[1] 카롱은 1976년 회사를 떠났다.
2.2. 군정과 통폐합 (1978~1980) [편집]
1978년 군정을 수립한 국가비상위원회는 같은 해 언론 통폐합을 단행했다. 일간지는 34종에서 14종으로 줄었고 민간 방송은 국영으로 흡수되었으며, 통신사는 하나로 합쳐졌다. 벨포르 통신과 루이나 경제통신은 강제로 문을 닫고 인력과 설비가 루이나 통신으로 넘어갔다.
통폐합 과정에서 세 통신사 기자 가운데 214명이 해직되었다. 해직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상자 다수가 노조 간부이거나 전쟁·치안 보도에서 정부와 다른 논조를 냈던 기자들이었다. 루이나 통신은 유일한 통신사가 되었고, 국가비상위원회의 발표문을 그대로 전국 언론에 배포하는 창구가 되었다.
통폐합 과정에서 세 통신사 기자 가운데 214명이 해직되었다. 해직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상자 다수가 노조 간부이거나 전쟁·치안 보도에서 정부와 다른 논조를 냈던 기자들이었다. 루이나 통신은 유일한 통신사가 되었고, 국가비상위원회의 발표문을 그대로 전국 언론에 배포하는 창구가 되었다.
2.3. 언론기본법 체제 (1980~1989) [편집]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은 무너졌지만, 1979년 국가비상위원회가 제정한 언론기본법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후 정부들도 이 법을 언론 통제 수단으로 유지했고, 루이나 통신 사장은 계속 정부가 임명했다. 정부 부처가 보도 방향을 담은 '협조 요청'을 보내는 관행도 이어졌다.
1984년 루이나 통신은 루이나 최초의 24시간 보도채널 TV 루이나 24를 개국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사업이었지만, 이 채널은 이후 루이나 통신이 통신사를 넘어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기반이 되었다.
1987년 기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편집권 독립과 해직 기자 복직을 요구했다. 1989년 헌정 위기를 거쳐 제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었다.
1984년 루이나 통신은 루이나 최초의 24시간 보도채널 TV 루이나 24를 개국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사업이었지만, 이 채널은 이후 루이나 통신이 통신사를 넘어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기반이 되었다.
1987년 기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편집권 독립과 해직 기자 복직을 요구했다. 1989년 헌정 위기를 거쳐 제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었다.
2.4. 독립 이후 (1989~현재) [편집]
1990년 제정된 「루이나통신법」은 루이나 통신의 지배구조를 새로 짰다. 이사회는 의회 추천 인사, 언론·학계 단체 추천 인사, 사원 대표로 구성되며, 이사장은 이사회가 선출한다. 편집국장은 사장이 지명하되 기자들의 투표로 임명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국가 기간 뉴스 공급에 대한 '공공서비스 계약' 형식으로 바뀌어, 지원과 편집 개입을 법적으로 분리했다. 1978년 해직 기자들은 1991년부터 복직이 시작되었다.
2004년 루이나 통신은 외부 위원이 참여한 「과거사 자체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1978년 통폐합 당시 경영진의 협력, 1980년대 정부 협조 요청의 수용 실태, 그리고 1975년 페뇨의 필름이 공보처의 요청으로 게재 보류된 뒤 사라진 경위를 기록했다. 루이나 통신은 보고서와 함께 공식 사과문을 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디지털 전환이 주된 과제가 되었다. 2016년 증시·스포츠 단신의 자동 작성 시스템을 도입했고, 2020년대에는 자체 앱과 포털의 직접 구독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04년 루이나 통신은 외부 위원이 참여한 「과거사 자체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1978년 통폐합 당시 경영진의 협력, 1980년대 정부 협조 요청의 수용 실태, 그리고 1975년 페뇨의 필름이 공보처의 요청으로 게재 보류된 뒤 사라진 경위를 기록했다. 루이나 통신은 보고서와 함께 공식 사과문을 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디지털 전환이 주된 과제가 되었다. 2016년 증시·스포츠 단신의 자동 작성 시스템을 도입했고, 2020년대에는 자체 앱과 포털의 직접 구독 비중을 늘리고 있다.
3. 사업 [편집]
루이나 통신의 2024년 매출은 약 5억 1천만 달러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정부 공공서비스 계약금 31%
- 국내 언론사·기관 뉴스 공급 27%
- TV 루이나 24 광고·채널 사용료 26%
- 사진·영상·데이터 판매 9%
- 해외 판매 5%
- 기타 2%
국가기간통신사가 대개 그렇듯 이익을 내기 위한 조직이 아니어서, 영업이익률은 3~4% 수준에 머문다. 정부 계약금은 해외 특파원망 유지와 외국어 서비스처럼 시장성이 낮은 공공 업무의 대가로 지급되며, 금액은 5년 단위 협약으로 정한다.
3.1. 통신 서비스 [편집]
국내 종합 뉴스 와이어가 핵심 상품이다. 전국 일간지와 지역지, RBC와 민간 방송, 포털, 정부기관 대부분이 구독하며, 지역지와 중소 방송사는 국제 뉴스와 중앙 정치 뉴스의 상당 부분을 루이나 통신 기사에 의존한다. 외국어 서비스는 영어·러시아어·프랑스어 등 6개 언어로 제공된다.
3.2. TV 루이나 24 [편집]
1984년 개국한 루이나 최초의 24시간 보도채널이다. 통신사 취재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며, 선거 개표나 재난 상황에서는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일이 많다.
3.3. 해외 취재망 [편집]
60개국에 특파원을 두고 있으며, AP·로이터 등 외국 통신사와 뉴스 교환 협약을 맺고 있다. 해외 지국 운영비는 매출로 회수되지 않는 대표적인 공공 업무로, 정부 계약금의 근거가 된다.
4. 주요 프로그램 [편집]
아래 프로그램은 모두 TV 루이나 24에서 방송된다.
4.1. 루이나 이브닝 [편집]
매일 저녁 7시에 방송되는 종합뉴스다. "사실 위에 서다"라는 슬로건 아래 정치·경제·사회·국제 이슈를 다루며, 보도채널 뉴스 가운데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생방송 중심이며 분야별 전문 기자의 해설 코너가 붙는다.
4.2. 뉴사이트 21 [편집]
매주 목요일 밤 9시에 방송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내부 고발, 부패, 권력형 비리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방송 이후 제도 개선이나 수사로 이어진 사례가 많아 '가장 무서운 프로그램'이라는 별명이 있다.
4.3. 분석과 전망 [편집]
매주 일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시사 해설 프로그램이다. 현직 의원, 전직 장관, 연구기관 전문가가 패널로 참여하며, RNA 미디어랩의 데이터 시각화를 활용한 설명이 특징이다.
4.4. 뉴스라인 [편집]
매일 오전 9시와 정오에 방송되는 속보·요약 뉴스다. 하루의 주요 흐름을 빠르게 전달하고 실시간 브리핑과 현장 연결이 강점이며, 긴급 상황에서는 특집 체제로 확대 편성된다.
4.5. 이 시각 루이나 [편집]
정규 프로그램 사이를 채우는 순환 뉴스 블록으로, 자막 뉴스와 현장 연결을 섞은 형식이다. 선거 개표와 재난 상황에서는 이 블록이 사실상 하루 종일 방송된다.
4.6. 경제와 세계 [편집]
매주 토요일 밤에 방송되는 경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경제 동향과 금융시장을 다룬다. 루이나 중앙은행·재무부 관계자와 주요 기업 인사가 출연하며 해외 특파원 리포트와 연결된다.
4.7. 100인의 루이나 [편집]
루이나 각지에서 선정된 시민 100명이 정부 정책과 사회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전문가와 당국자가 답하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다. 시청자 사전 투표로 주제를 정하며 앱과 방송으로 동시 송출된다.
5. 성향 [편집]
루이나 통신은 진보 성향 언론으로 분류된다. 루이나 언론의 성향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경제 정책보다 제방 계획·스틸워터 계획·군정 등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인데, 루이나 통신은 주류 언론 가운데 이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보도해 온 매체다. 2011년 제방 계획 부속서 공개 청구가 거부되었을 때 이를 가장 길게 다뤘고, 스틸워터 국가배상 소송과 띠에우리엔 재조사 요구도 꾸준히 보도해 왔다.
이 태도는 회사 자신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루이나 통신은 스틸워터 계획에 기자를 잃은 피해자이면서, 1978년 군정의 통폐합으로 몸집을 키운 수혜자이기도 하다. 2004년 자체 조사 보고서 이후 과거사 보도는 사내에서 일종의 책무로 여겨지며, 비판자들은 이를 두고 "속죄가 편집 방침이 되었다"고 평한다.
정책 의제에서도 진보 쪽에 가깝다. 임대료 규제, 기초소득 시범사업, 기후 정책 같은 사안에서 사회민주당 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소개하거나 우호적인 해설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편집국은 공식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옴부즈맨과 외부 자문단을 두어 편향 논란에 대응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정부 출자 매체가 특정 역사관을 대변한다며 "관제 언론"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2021년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정부 계약금이 사실상 여당 우호 보도의 대가라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루이나 통신은 계약금 규모가 법정 협약으로 정해지고, 보수 정부였던 콜턴 정권 시기에도 정부 비판 보도를 이어 왔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국제적으로는 프랑스의 AFP, 이탈리아의 ANSA처럼 정부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법적으로 편집 독립을 보장받는 국가기간통신사 모델로 분류되며, 세계공영언론연합(GPA)에 가입해 있다.
이 태도는 회사 자신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루이나 통신은 스틸워터 계획에 기자를 잃은 피해자이면서, 1978년 군정의 통폐합으로 몸집을 키운 수혜자이기도 하다. 2004년 자체 조사 보고서 이후 과거사 보도는 사내에서 일종의 책무로 여겨지며, 비판자들은 이를 두고 "속죄가 편집 방침이 되었다"고 평한다.
정책 의제에서도 진보 쪽에 가깝다. 임대료 규제, 기초소득 시범사업, 기후 정책 같은 사안에서 사회민주당 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소개하거나 우호적인 해설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편집국은 공식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옴부즈맨과 외부 자문단을 두어 편향 논란에 대응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정부 출자 매체가 특정 역사관을 대변한다며 "관제 언론"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2021년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정부 계약금이 사실상 여당 우호 보도의 대가라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루이나 통신은 계약금 규모가 법정 협약으로 정해지고, 보수 정부였던 콜턴 정권 시기에도 정부 비판 보도를 이어 왔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국제적으로는 프랑스의 AFP, 이탈리아의 ANSA처럼 정부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법적으로 편집 독립을 보장받는 국가기간통신사 모델로 분류되며, 세계공영언론연합(GPA)에 가입해 있다.
6. 주요 보도 [편집]
6.1. 띠에우리엔 보도 (1975) [편집]
청북전쟁 중이던 1975년, 종군기자 이브 L. 카롱은 띠에우리엔 시가전이 끝난 직후인 10월 26일 현지에 들어가 3주간 머물렀다. 11월 12일 송고되어 14일 배포된 기사는 정부 발표가 청평 당국의 처형만 강조한 것과 달리, 시가전 중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와 점령 이후 부역자 색출 과정의 즉결처분 정황을 함께 전했다.
이 기사는 해외 언론에 널리 인용되었고, 참전 지지 여론이 그해 9월 64%에서 12월 38%로 떨어지는 과정의 한 계기로 꼽힌다. 그러나 같은 팀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가 찍은 색출 현장 필름은 공보처의 요청으로 게재가 보류된 뒤 사라졌고, 페뇨는 1976년 1월 18일 숨졌다. 카롱은 1976년 퇴사해 국외에 머물다 1984년 회고록을 펴냈다. 루이나 통신이 필름 게재 보류 경위를 공식 인정한 것은 2004년 자체 조사 보고서에서였다.
이 기사는 해외 언론에 널리 인용되었고, 참전 지지 여론이 그해 9월 64%에서 12월 38%로 떨어지는 과정의 한 계기로 꼽힌다. 그러나 같은 팀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가 찍은 색출 현장 필름은 공보처의 요청으로 게재가 보류된 뒤 사라졌고, 페뇨는 1976년 1월 18일 숨졌다. 카롱은 1976년 퇴사해 국외에 머물다 1984년 회고록을 펴냈다. 루이나 통신이 필름 게재 보류 경위를 공식 인정한 것은 2004년 자체 조사 보고서에서였다.
상세 내용은 띠에우리엔 대학살 문서 참고.
6.2. 교육개혁 백서 시리즈 (2002) [편집]
신교육법 전면 시행 이후, 루이나 통신은 전국 학교 현장을 1년간 종단 취재해 교육 격차·학교 자치·체벌 논란을 연속 보도했다. 이 시리즈는 같은 해 랜드해 언론상 대상을 받았고, 이후 교육 관련 법령 다섯 건의 개정에 영향을 주었다.
6.3. 웨스트로 참사 보도 (2015) [편집]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직후 TV 루이나 24는 현장을 생중계하며 초기 대응의 혼선과 정부 초동 발표의 오류를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유족 농성에 참여한 대학생 루스탈지아 그래이를 둘러싼 소문을 퍼뜨려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는 의혹을 단독 보도했고, 이는 의회 청문회로 이어졌다.
6.4. 콘스탄티노폴 집단 구금 보도 (2017) [편집]
콘스탄티노폴에서 벌어진 주민 집단 구금과 강제 이송 사태를 위성 영상, SNS 분석, 탈출 주민 인터뷰로 추적한 연속 보도다. 이 보도는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에 인용되었고, 취재 기자 3명은 국제언론인협회의 언론자유상을 받았다.
6.5. 국방 비리 연속 보도 (2019) [편집]
해군 중어뢰 성능 기준 미달, 차세대 제식소총 폭발 사고, CV-43 도입 뇌물 의혹, 중국산 부품을 쓴 감시장비 납품 등 국방 비리 의혹을 잇달아 보도했다. 이후 군 검찰과 광역수사국(MIA)의 합동 수사로 군 고위 간부들이 체포되었고, 국방부 고위직이 대거 경질되었다.
7. 다른 언론사와의 관계 [편집]
루이나 통신은 대부분의 언론사에 기사를 공급하는 도매상이라, 다른 언론사와 경쟁자이면서 거래처인 관계에 있다. 진보 성향의 《라 부아》·《아르시브》와는 탐사보도에서 자주 협력하며, RBC와는 재난·선거 보도에서 공동 취재 체계를 운영한다.
가장 오래 갈등해 온 상대는 1885년 창간된 루이나 최대 부수의 보수 일간지 《르 나시오날》이다. 르 나시오날은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지하며, 과거사 문제에서는 "끝없는 청산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루이나 통신의 과거사 보도를 두고 르 나시오날은 "정부 돈으로 쓰는 역사 재판"이라고 비판하고, 루이나 통신은 르 나시오날이 1978년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매체라는 점을 들어 맞서 왔다.
두 매체의 갈등은 논조 차이를 넘어 공개 비평과 보도 윤리 공방으로 이어지곤 한다. 2019년 국방 비리 보도를 두고 르 나시오날은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라고 반박했고, 루이나 통신은 르 나시오날을 "방산업계와 유착된 방어적 언론"이라고 받아쳤다. 르 나시오날은 루이나 통신의 정부 계약금, 자동 기사 작성 시스템, 공영이사회 구성에도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 왔으며, 루이나 통신은 이를 "독점 통신사 흔들기를 통한 시장 확대 시도"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르 나시오날은 여전히 루이나 통신의 주요 구독사다. 선거 개표 공동 보도 체계와 재난 보도 협약에는 두 매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어, 이념 대립과 실무 협력이 공존하는 관계로 평가된다.
가장 오래 갈등해 온 상대는 1885년 창간된 루이나 최대 부수의 보수 일간지 《르 나시오날》이다. 르 나시오날은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지하며, 과거사 문제에서는 "끝없는 청산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루이나 통신의 과거사 보도를 두고 르 나시오날은 "정부 돈으로 쓰는 역사 재판"이라고 비판하고, 루이나 통신은 르 나시오날이 1978년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매체라는 점을 들어 맞서 왔다.
두 매체의 갈등은 논조 차이를 넘어 공개 비평과 보도 윤리 공방으로 이어지곤 한다. 2019년 국방 비리 보도를 두고 르 나시오날은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라고 반박했고, 루이나 통신은 르 나시오날을 "방산업계와 유착된 방어적 언론"이라고 받아쳤다. 르 나시오날은 루이나 통신의 정부 계약금, 자동 기사 작성 시스템, 공영이사회 구성에도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 왔으며, 루이나 통신은 이를 "독점 통신사 흔들기를 통한 시장 확대 시도"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르 나시오날은 여전히 루이나 통신의 주요 구독사다. 선거 개표 공동 보도 체계와 재난 보도 협약에는 두 매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어, 이념 대립과 실무 협력이 공존하는 관계로 평가된다.